본문 범위  창세기 41장 1절-57절

40장은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었다는 말로 끝났습니다. 41장은 그로부터 만 이 년 뒤에 시작해요. 바로가 하숫가에서 꾼 두 꿈, 그 꿈 때문에 겨우 되살아난 기억, 그리고 하루 만에 옥에서 총리 자리로 옮겨 간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이 장에 담겨 있습니다. 쉰일곱 절이나 되는 긴 장이라 장면을 넷으로 나눠 천천히 따라가 보았습니다.

만 이 년 뒤, 하숫가에서 꾼 두 꿈

아침 해가 뜨는 넓은 강가 갈대밭 옆 물가에서 소들이 풀을 뜯는 수채화

본문은 시간부터 적습니다. 만 이년 후에.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에게 나를 생각해 달라고 부탁한 뒤로 꼬박 두 해가 흘렀다는 뜻이에요. 그동안 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한 줄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두 해가 지나갔어요.

그때 바로가 꿈을 꿉니다. 하숫가에 서 있는데 아름답고 살진 암소 일곱이 물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풀을 뜯어요. 그 뒤로 흉악하고 파리한 암소 일곱이 또 올라와 같은 물가에 섭니다. 그러더니 파리한 소들이 살진 소들을 먹어 버려요. 바로는 거기서 잠을 깹니다.

다시 잠이 들자 두 번째 꿈이 이어집니다. 한 줄기에서 무성하고 충실한 이삭 일곱이 나오고, 그 뒤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이삭 일곱이 나와요. 마른 이삭들이 충실한 이삭들을 삼켜 버립니다. 바로가 깨어 보니 꿈이었어요.

아침이 되자 바로의 마음이 번민합니다. 애굽의 술객과 박사를 모두 불러 꿈을 들려주었지만 풀어 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왕궁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다 모였는데도 그랬습니다.

옥에서의 두 해는 한 줄도 적히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는 바로의 꿈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해요.

잊었던 이름이 다시 불리던 아침

열린 돌문 너머로 환한 햇빛이 쏟아지고 바닥에 접어 둔 새 옷과 놋대야가 놓인 수채화

그 자리에서 술 맡은 관원장이 입을 엽니다. 내가 오늘날 나의 허물을 추억하나이다. 두 해 동안 잊고 있던 일을 이제야 떠올린 거예요. 그는 옥에서 함께 있던 히브리 소년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 소년이 꿈을 풀어 준 대로 자기는 복직했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렸다고요.

바로는 바로 사람을 보냅니다. 본문은 그들이 급히 요셉을 옥에서 냈다고 적어요. 그런데 요셉은 곧장 달려가지 않습니다.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바로 앞에 들어가요. 애굽 왕 앞에 서는 법도를 따른 것이겠지요. 두 해를 기다린 사람이 그 짧은 준비를 건너뛰지 않았습니다.

바로가 먼저 말합니다. 꿈을 꾸었는데 풀 사람이 없더라,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요셉의 대답은 40장에서 했던 말과 결이 같아요.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옥에서 나온 지 한나절도 안 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실력을 보여야 다시는 옥에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어요. 그런 순간에도 요셉은 자기를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대답할 분은 따로 계시다고 먼저 말해 두고 나서 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옥에서 나온 그날에도 요셉은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로 입을 열었습니다.

꿈은 하나, 일곱 해 뒤에 오는 일곱 해

왼쪽에는 황금빛으로 무르익은 밀 이삭이, 오른쪽에는 바람에 마른 가는 이삭이 서 있는 들판 수채화

바로는 꿈을 다시 들려줍니다. 처음 본문보다 한 마디가 더 붙어요. 그같이 흉악한 소는 애굽 땅에서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고, 살진 소를 먹었는데도 먹은 듯하지 않고 여전히 흉악하더라고요. 그 모습이 바로에게 얼마나 섬뜩했는지 그대로 묻어납니다.

요셉은 먼저 바로의 꿈은 하나라고 말합니다. 좋은 암소 일곱과 좋은 이삭 일곱은 일곱 해, 파리한 소 일곱과 마른 이삭 일곱도 일곱 해예요. 온 애굽에 큰 풍년이 일곱 해 들고, 그 뒤로 흉년이 일곱 해 이어진다는 풀이였습니다. 흉년이 얼마나 심할지, 앞서 누린 풍년을 이 땅이 기억하지 못할 정도라고 했어요.

꿈을 두 번 겹쳐 꾼 데에도 이유가 있다고 덧붙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고 속히 행하실 거라고요. 여기까지가 해석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거기서 말을 멈추지 않았어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세워 땅을 다스리게 하고, 관리들을 두어 풍년 일곱 해 동안 소출의 오분의 일을 거두라고 합니다. 거둔 곡물은 각 성에 쌓아 두어 흉년을 대비하라고요. 꿈 풀이를 청했는데 요셉은 할 일까지 내놓았습니다. 듣기만 하고 끝날 말이 아니었어요.

요셉은 무엇이 올지를 말한 데서 멈추지 않고, 그때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말했습니다.

인장 반지와 두 아들의 이름

바로와 신하들은 이 말을 좋게 여깁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디서 얻겠느냐고 하더니 요셉에게 내 집을 다스리라고 해요. 자기가 요셉보다 높은 건 보좌뿐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어 줍니다. 버금 수레에 태우자 사람들이 그 앞에서 엎드리라고 외쳤어요.

바로는 요셉에게 사브낫바네아라는 애굽 이름을 주고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아내로 줍니다. 이때 요셉의 나이가 서른이었어요. 열일곱에 형들 손에 팔려 왔으니 열세 해가 지난 셈입니다. 요셉은 곧 애굽 온 땅을 돌아봅니다.

풍년 일곱 해 동안 소출이 정말 많았습니다. 요셉은 각 성 둘레 밭의 곡물을 그 성에 쌓았어요. 바다 모래처럼 많아서 나중에는 세는 것도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 사이 두 아들이 태어나요. 맏아들은 므낫세, 하나님이 내 모든 고난과 아비 집 일을 잊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에브라임, 내가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는 뜻이에요.

풍년이 그치고 요셉의 말대로 흉년이 시작됩니다. 다른 나라에는 기근이 들었지만 애굽에는 먹을 것이 있었어요.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자 바로는 요셉에게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합니다. 요셉은 창고를 열어 곡식을 팔았고, 온 세상 사람들이 양식을 사러 애굽으로 내려옵니다. 장은 그렇게 끝나요.

므낫세는 잊게 하셨다, 에브라임은 창성하게 하셨다. 요셉은 열세 해를 두 아이의 이름에 담았습니다.

묵상 포인트

  1. 첫째, 41장은 만 이년 후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요셉이 옥에서 보낸 두 해는 본문에 한 줄도 적히지 않았어요. 기다리는 시간이 아무 기록 없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이야기는 그 시간을 건너뛰지 않고 그 끝에서 다시 이어진다는 걸 생각해 봅니다.
  2. 둘째, 요셉은 꿈을 풀어 준 다음에 풍년 동안 오분의 일을 거두라는 일거리까지 내놓았습니다. 앞일을 아는 것과 그 앞일을 준비하는 것은 다른 일이에요. 좋은 시절이 길게 이어질 때 무엇을 따로 덜어 두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3. 셋째, 맏아들 이름은 잊게 하셨다는 뜻인데, 정작 요셉은 그 고난을 이름에 담아 날마다 부르게 됩니다. 아픈 기억이 없어진 게 아니라 더는 나를 묶지 않게 된 것이겠지요. 내게도 그렇게 이름 붙일 만한 시간이 있었는지 조용히 떠올려 봅니다.

창세기 41장은 옥에서 시작해 곡식 창고 앞에서 끝납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말을 하고 있어요. 40장의 옥에서도, 41장의 왕궁에서도 요셉은 해석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고 먼저 말했습니다. 자리가 바뀌어도 그 첫마디는 바뀌지 않았어요. 장의 마지막 절에서 온 세상이 애굽으로 양식을 사러 옵니다. 그 무리 가운데 가나안에 있는 요셉의 형들도 끼어 있게 되는데, 그 이야기는 42장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