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9장, 야곱은 라헬을 얻으려고 14년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본문 범위 창세기 29장 1절-35절
야곱과 라헬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로 많이 기억됩니다. 한 여인을 얻으려고 열네 해를 참은 남자, 속아서 억지로 맞은 못생긴 언니. 대개 이런 줄거리입니다. 그런데 29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숫자도, 레아를 그린 말도, 이 장이 끝나는 자리도 기억과 조금씩 다릅니다. 오늘은 그 어긋난 대목 세 군데를 본문 문장으로 다시 맞춰 봅니다.
라헬은 칠 년 뒤가 아니라 칠 일 뒤에 왔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해 14년을 일했다는 말은 맞습니다. 문제는 그 14년을 다 채우고 나서야 라헬을 아내로 맞았다고 기억하는 데 있습니다. 설교 예화에서도 열네 해를 기다린 사랑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순서를 따라가 봅니다. 18절에서 야곱은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칠년을 봉사하겠다고 합니다. 20절에서 그 칠 년이 지나갑니다. 23절 저녁에 신방에 들어온 사람은 레아였고, 25절 아침에야 그 사실을 압니다. 그러자 라반이 2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를 위하여 칠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28절이 곧바로 이어집니다.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레아와의 혼인 잔치 한 주가 끝나자마자 라헬이 옵니다. 두 번째 칠 년은 30절에 나옵니다. 다시 칠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더라. 라헬을 맞은 뒤에 치른 값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라헬을 기다린 시간은 칠 년 하고 일주일입니다. 나머지 칠 년은 이미 곁에 있는 아내를 두고 갚아 나간 빚이었습니다. 기다림의 이야기라기보다 약속한 값을 끝까지 치른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라헬은 첫 칠 년이 끝나고 일주일 뒤에 왔고, 두 번째 칠 년은 그 뒤에 치른 값이었습니다.
레아를 두고 본문이 적은 말은 눈 하나뿐입니다

레아는 못생긴 언니, 라헬은 예쁜 동생. 이 대비가 너무 익숙해서 레아의 얼굴까지 떠올리는 분이 많습니다. 그림책에서도 레아는 늘 한 걸음 뒤에 어둡게 서 있습니다.
17절은 두 사람을 이렇게 적습니다.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안력은 눈의 힘입니다. 레아에 대해서는 눈이 약하다는 말 하나뿐이고, 곱다 밉다는 말은 라헬 쪽에만 있습니다. 레아가 못생겼다는 문장은 29장 어디에도 없습니다.
본문이 레아를 두고 더 많이 적는 건 얼굴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첫아들 르우벤을 낳고 한 말이 32절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둘째 때는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다고 하고, 셋째 때는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합니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습니다.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이것이 레아의 모습에 대해 본문이 남긴 말의 전부입니다.
속은 야곱을 두고 본문은 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형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이 이번에는 외삼촌에게 똑같이 당했다. 뿌린 대로 거둔 것이다. 29장을 이렇게 한 줄로 정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가르치시려고 라반을 쓰셨다는 해석도 흔합니다.
되갚음의 모양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25절에서 야곱은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하고 따지고, 라반은 26절에서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고 답합니다. 불과 두 장 전에 아우가 형의 자리를 차지했던 사람에게 형과 아우라는 말이 돌아옵니다. 읽는 사람은 그 말에서 멈칫하게 됩니다.
하지만 본문은 거기에 아무 설명도 달지 않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죄 때문이라는 말도, 하나님이 이 일로 무엇을 가르치셨다는 말도 없습니다. 더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1절부터 30절까지 여호와라는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우물가의 만남도, 칠 년의 봉사도, 신방의 속임도 사람들끼리 벌인 일로만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처음 나오는 곳은 31절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레아 쪽을 향합니다.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29장에서 하나님이 보신 사람은 속은 야곱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한 레아였습니다.
1절부터 30절까지 여호와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고, 처음 나오는 31절은 레아를 향합니다.
기억이 본문과 어긋난 자리는 어디였을까

열네 해라는 숫자는 20절과 30절에 칠년이 두 번 나오기 때문에 생깁니다. 둘을 더하면 14가 되고, 사이에 끼어 있는 27절과 28절의 칠 일이 빠지면서 14년을 다 채우고 결혼한 이야기로 굳습니다. 숫자는 맞는데 순서가 바뀐 경우입니다.
레아의 얼굴은 대비에서 생깁니다. 라헬이 곱고 아리따우면 반대편은 못생겼겠거니 하고 채워 넣게 됩니다. 본문은 눈이라는 한 가지만 말하고 멈췄는데 읽는 쪽이 나머지를 그려 넣은 셈입니다.
벌이라는 해석은 27장의 여운에서 나옵니다. 앞 장이 워낙 무거우니 다음 장에서 값을 치르는 장면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읽으면 이 장의 무게가 야곱에게만 쏠리고 31절 이후의 다섯 절이 부록처럼 밀려납니다. 정작 29장은 레아가 넷째 아들 유다를 낳고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는 35절에서 끝납니다.
29장은 야곱과 라헬의 입맞춤에서 시작해 레아의 찬송으로 끝납니다.
묵상 포인트
- 첫째, 레아가 아들들에게 붙인 이름을 차례로 읽으면 마음이 움직인 길이 보입니다. 남편이 사랑하리라, 남편이 연합하리라 하던 말이 넷째에 와서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로 바뀝니다. 남편의 마음이 달라졌다는 말은 끝내 없습니다. 달라진 건 레아가 바라보는 쪽이었습니다.
- 둘째, 칠 년을 수일 같이 여겼다는 20절은 여전히 아름다운 문장입니다. 다만 그 칠 년이 끝난 뒤에 또 칠 년이 있었다는 것까지 함께 읽어야 합니다. 사랑해서 가벼웠던 시간 뒤에 약속이라 지켜야 했던 시간이 이어집니다.
- 셋째, 하나님이 보셨다는 말은 가장 잘 보이지 않던 사람에게 붙었습니다. 잔치를 벌인 라반도, 따지던 야곱도, 사랑받던 라헬도 아니고 총이 없던 레아였습니다.
29장은 우물가에서 시작합니다. 야곱이 목자들이 다 모여야 옮긴다던 돌을 먼저 옮기고,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내어 웁니다. 누가 봐도 여기서부터 사랑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은 첫머리입니다. 그런데 이 장을 끝까지 읽으면 마지막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입니다. 그의 넷째 아들 유다의 이름에서 훗날 한 지파가 나오고 다윗의 집안이 나옵니다. 사랑받던 사람의 이야기로 기억되던 장이, 적어 놓은 문장대로 읽으면 사랑받지 못한 사람을 하나님이 보신 이야기로 닫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