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범위  창세기 8장 1절-9장 17절

7장은 물이 일백 오십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로 끝났습니다. 그 뒤로 방주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8장은 그 침묵을 물이 빠졌다는 말로 열지 않고, 하나님이 노아를 권념하셨다는 말로 엽니다. 물이 줄어드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잊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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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 무지개 약속 | 다시 시작된 세상

물보다 먼저 적힌 것은 권념하사였습니다

넓은 물 위로 바람이 지나가고 멀리 산봉우리가 희미하게 드러나는 수채화 삽화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8장의 첫 문장은 물의 높이부터 말하지 않고 방주 안에 있는 이름들부터 부릅니다. 백오십일 동안 아무 소식도 적히지 않던 자리에서 처음 나오는 말이 권념하사입니다. 잊지 않고 마음에 두셨다는 뜻의 옛말입니다.

그 다음에 바람이 옵니다. 바람으로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물을 걷어 내는 방식이 요란하지 않습니다.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7장에서 터지고 열렸던 것들이 이번에는 하나씩 닫힙니다.

물러가는 속도는 느립니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하고. 점점이라는 말이 굳이 붙어 있습니다. 칠월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고, 산들의 봉우리가 보인 것은 시월 일일입니다. 배가 무언가에 닿은 뒤에도 두 달 반이 더 지나서야 눈에 보이는 것이 생겼습니다.

백오십일 만에 처음 적힌 말은 물이 빠졌다가 아니라 권념하사였습니다.

까마귀와 비둘기, 그리고 감람 새 잎사귀

잔잔한 물 위를 낮게 나는 흰 비둘기가 작은 잎사귀를 물고 있는 수채화 삽화

사십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문이 아니라 창입니다. 밖으로 나갈 수는 없고 내다볼 수만 있는 크기입니다.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 알 방법이 없어서 노아는 새를 내보냅니다.

까마귀는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습니다. 돌아오지도 않고 소식도 없습니다.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 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비둘기는 접족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옵니다.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 들이고. 빈손으로 돌아온 새를 손을 내밀어 받아 주는 장면이 한 줄로 남아 있습니다.

또 칠일을 기다려. 이 말이 두 번 되풀이됩니다. 두 번째 비둘기는 저녁때에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고, 세 번째 비둘기는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로 끝납니다. 소식은 잎사귀 한 장으로 왔고, 다 되었다는 신호는 새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도 시간이 더 남아 있습니다. 육백 일년 정월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혔고, 땅이 마른 것은 이월 이십칠일입니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열어 본 것은 뚜껑이었고 문은 아직 그대로였습니다.

잎사귀 한 장이 돌아온 뒤에도 노아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나오라 하시매, 마른 땅에 단을 쌓고

물이 빠진 산자락에 돌로 쌓은 낮은 단이 있고 연기가 가늘게 오르는 수채화 삽화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들어갈 때 문을 닫으신 분이 나오라는 말씀도 하십니다. 땅이 마른 것을 눈으로 본 뒤에도 노아는 그 한 마디를 기다렸습니다.

나오는 순서는 들어가던 순서를 그대로 되짚습니다.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그리고 그 뒤에 생육하고 번성하리라는 말이 붙습니다. 방주 안에서 암수로 세어 두었던 목록이 이제 땅으로 나가는 목록이 되었습니다.

마른 땅을 밟고 노아가 처음 한 일은 집을 짓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정결한 짐승을 일곱씩 실으라 하신 이유가 이 대목에서야 드러납니다. 한 해가 넘도록 함께 떠 있던 것들 가운데 일부를 그렇게 돌려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그런데 뒤에 붙은 이유가 뜻밖입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6장에서 홍수의 이유로 적혔던 말이 여기서는 다시 홍수를 내리지 않으시겠다는 이유로 놓여 있습니다.

홍수의 이유였던 문장이, 다시는 홍수를 내리지 않겠다는 이유로 다시 적혔습니다.

구름 속에 두신 무지개

비가 그친 들판 위로 구름 사이에 옅은 무지개가 걸려 있는 수채화 삽화

이어지는 약속은 뜻밖에 소박합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큰 사건을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 더웠다가 다시 추워지는 일처럼 해마다 되풀이되어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것들을 하나씩 세어 주십니다.

9장에서 언약이 분명하게 세워집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상대가 사람만이 아닙니다. 너희와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니라,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에게 세우신 언약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증거는 무지개입니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맑게 갠 하늘이 아니라 구름 속입니다.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이라고 이어집니다. 하늘이 다시 어두워지는 그 자리에 표적을 두신 셈입니다.

기억하는 쪽이 누구인지도 적혀 있습니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노아더러 보고 기억하라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기억하시겠다는 표적을, 사람도 함께 볼 수 있는 자리에 걸어 두셨습니다.

무지개는 사람이 보고 기억할 표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고 기억하시겠다는 표적입니다.

묵상 포인트

  1. 첫째, 권념하사라는 한 마디를 다시 읽어 봅니다. 아무 소식도 들리지 않는 동안에도 잊히지 않았다는 말이 어떤 자리에 놓여 있었는지 잠시 생각해 봅니다.
  2. 둘째, 노아는 잎사귀 한 장을 받고도 곧바로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신호 하나를 두고 서둘러 결론을 내리려는 일이 있는지 떠올려 봅니다.
  3. 셋째, 무지개는 구름 속에 놓였습니다. 하늘이 흐려지는 날에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지 한 줄로 적어 봅니다.

창세기 8장과 9장은 사건이 크게 일어나는 장이 아닙니다. 물이 점점 물러가고, 새가 갔다가 돌아오고, 땅이 마르고, 단에 연기가 오르고,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걸립니다. 다시 시작된 세상은 요란한 신호가 아니라 심음과 거둠, 여름과 겨울처럼 되풀이되는 것들 위에 놓였습니다. 그 되풀이가 쉬지 않는다는 약속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남은 문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