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범위  창세기 12장 1절-20절 (배경으로 11장 27절-32절)

창세기는 11장에서 흩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끝내고, 족보를 한 줄씩 내려오다가 한 사람 앞에 멈춰 섭니다. 아브람입니다. 12장은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듣고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스무 절 안에 담아 둡니다. 오늘은 장면을 따라가는 대신 그 한 사람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그가 서 있던 자리, 그에게 건네진 말, 그가 한 선택,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일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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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 아브라함의 부르심 | 떠나라, 내가 보여줄 땅으로

하란에 멈춰 선 집에 그가 있었습니다

들판 어귀에 오래 머문 장막들이 늘어서 있고 그 옆으로 흙길이 멀리 이어지는 저녁 풍경의 수채화 삽화

12장의 첫 절을 읽기 전에 11장 끝을 봐야 그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 보입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목적지는 이미 가나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나안에 닿지 못하고 하란에 머물렀습니다.

그 집에는 이미 두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들 하나가 아버지보다 앞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다음 세대가 끊긴 자리와 다음 세대가 시작되지 않는 자리가 한 집안에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이어서 데라는 이백 오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하고 11장이 닫힙니다. 떠났으나 도착하지 못한 여정, 앞세운 아들, 태어나지 않은 아이, 그리고 아버지의 장례. 12장의 아브람은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간 자리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은 그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한 줄도 적지 않습니다.

아브람의 이야기는 새 출발선이 아니라, 한 번 멈춘 여정 위에서 시작합니다.

이르시되, 너는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새벽 안개가 깔린 넓은 들에 좁은 흙길이 언덕 너머로 이어지다 흐려지는 수채화 삽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떠나라는 대상이 셋인데 순서가 점점 좁아집니다. 본토는 나라이고, 친척은 그를 아는 사람들이고, 아비 집은 그가 자던 방입니다. 넓은 것부터 놓고 가장 가까운 것을 마지막에 놓습니다.

그런데 가야 할 곳은 지명으로 적히지 않습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 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아직 지시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떠나는 자리는 셋을 하나씩 세어 가며 분명하게 말해 주고, 도착할 자리는 이름조차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가 받은 정보의 균형은 이렇게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약속에는 이름 이야기가 나옵니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바로 앞 장에서 사람들이 성과 대를 쌓으며 했던 말은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였습니다. 한쪽은 이름을 내려고 모여서 쌓았고, 다른 한쪽은 이름을 받으려고 홀로 떠납니다. 같은 낱말이 두 장 사이에서 정반대 방향으로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끝은 그 한 사람에게서 멈추지 않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흩어진 온 지면의 족속들이 여기서 다시 언급됩니다. 한 사람을 부르는 말인데 시야는 처음부터 온 땅에 놓여 있습니다.

떠날 곳은 셋으로 나누어 일러 주시고, 갈 곳은 이름 없이 지시할 땅이라고만 하셨습니다.

칠십 오세에 그는 하란을 떠났습니다

큰 상수리나무 아래 장막 한 채와 돌을 쌓아 만든 단이 나란히 놓인 언덕 풍경의 수채화 삽화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그가 무엇을 고민했는지, 며칠을 망설였는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들은 말과 떠난 행동 사이에 아무 문장도 끼워 넣지 않은 채 곧바로 갔다고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하고 나이가 붙습니다. 새로 시작하기 좋은 나이라고 말할 만한 숫자는 아닙니다.

짐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하란은 잠깐 스쳐 간 곳이 아니라 소유가 모이고 사람이 붙을 만큼 오래 머문 곳이었습니다. 두고 가는 것이 별로 없어서 가벼웠던 걸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뒤에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는 말이 옵니다. 아버지 대에 이르지 못했던 그 땅입니다.

도착해서 처음 마주친 사실은 뜻밖입니다.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약속으로 받은 땅에 이미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호와께서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십니다. 네게 주겠다가 아니라 네 자손에게 주겠다입니다. 자식이 없다고 적혀 있던 사람이 듣는 말입니다.

그가 한 일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단을 쌓고 장막을 쳤습니다.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성도 아니고 대도 아닙니다. 걷으면 옮겨지는 장막과 자기 이름을 새기지 않은 단입니다. 그리고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로 이 대목이 닫힙니다. 그는 도착한 뒤에도 계속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을 쌓지 않고 장막을 쳤습니다. 받은 땅 위에서도 여전히 옮겨 다니는 자리였습니다.

기근이 들자 그는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마른 들판을 가로질러 낮은 쪽으로 내려가는 나귀와 양 떼의 행렬을 멀리서 담은 수채화 삽화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지시받은 땅에 겨우 닿았는데 그 땅에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약속이 곧바로 형편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같은 장 안에서 이렇게 빨리 드러납니다.

애굽에 가까워지자 그가 아내에게 한 말이 적혀 있습니다.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문장의 주어가 계속 나입니다. 내가 안전하고, 내 목숨이 보존되겠다는 말입니다. 얼마 전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 지금은 자기 목숨 하나를 셈하고 있습니다.

일은 그가 계산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사래는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여졌고,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고 적힙니다. 아내를 잃은 자리에서 재산이 늘었습니다. 본문은 이 대목에 아무 논평도 달지 않고 목록만 나열합니다.

매듭을 지은 것은 그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그리고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하고 묻습니다. 부름을 받은 사람이 이방의 왕에게 책망을 듣고, 그 왕의 명으로 아내와 소유를 돌려받아 그곳을 떠납니다. 12장은 그를 미화하지도 나무라지도 않고,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적어 둔 채 끝납니다.

부름을 받은 뒤에도 흔들리는 자리가 왔고, 본문은 그것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묵상 포인트

  1. 첫째, 그가 들은 것은 지시할 땅이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다 알고 나서야 떼려고 미뤄 둔 걸음이 지금 있는지 돌아봅니다.
  2. 둘째,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는 말을 듣고 그는 그 자리에 단을 쌓았습니다. 내 생전에 결과를 보지 못할 일에도 오늘 할 몫이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3. 셋째, 기근 앞에서 그는 내 목숨이 보존되겠다는 말부터 했습니다. 형편이 급해질 때 가장 먼저 지키려 드는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살펴봅니다.

12장의 아브람은 완성된 사람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멈춰 선 집에서 나와 이름 없는 땅으로 걸었고, 도착한 땅에서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을 보았고, 기근이 오자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그가 남긴 것은 성이 아니라 장막 자리와 단이었습니다. 이야기는 그를 다시 남방으로 올려보내며 이어집니다. 얻은 것과 부끄러운 것을 함께 짊어진 채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