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범위  창세기 27장 1절-46절

창세기 27장은 읽고 나서 마음이 개운해지지 않는 장입니다. 속인 사람이 복을 받고 속은 사람이 소리를 높여 웁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일을 두고 옳다 그르다 판정을 내리지 않고, 벌어진 대로만 적어 둡니다. 그래서 읽다 보면 멈추게 되는 자리가 몇 군데 생기는데, 오늘은 그중 네 곳에 서서 27장이 실제로 무엇을 적어 두었는지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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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 야곱, 축복을 훔치다 | 형의 몫을 가로채다

이삭은 정말 못 알아본 것일까

27장은 이삭의 눈에서 시작합니다.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하고 1절이 적습니다. 그 한 줄이 뒤에 일어날 일의 조건을 다 만들어 둡니다. 보이지 않으니 손으로 확인해야 하고, 손으로 확인하니 염소 새끼의 가죽에 속습니다.

그렇다고 이삭이 순순히 넘어간 것은 아닙니다. 야곱이 들어오자마자 네가 누구냐, 하고 묻습니다. 사냥한 고기를 벌써 가져왔다는 말에는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하고 되묻습니다. 대답을 듣고도 미심쩍었는지 가까이 오라,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 합니다. 만지고 나서도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하고 한 번 더 확인합니다.

네 번 묻고 한 번 만졌습니다. 그러고도 넘어갑니다. 22절이 그 순간을 이렇게 적습니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귀와 손이 서로 다른 말을 하는데 이삭은 손 쪽을 택합니다. 23절은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하고 장면을 닫습니다.

알고도 눈감아 준 것 아니냐는 물음이 여기서 자주 나옵니다. 본문은 그렇게 적지 않습니다. 분별치 못했다고만 적어 둡니다. 다만 이삭이 아무 의심 없이 속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27장이 분명하게 남겨 뒀습니다. 의심은 했고 확인도 했는데, 어긋난 신호 하나를 그냥 지나갔습니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귀가 이상하다고 말하는데 손이 맞다고 하자, 이삭은 손을 믿었습니다.

리브가는 왜 저주까지 자기가 받겠다고 했을까

일을 꾸민 사람은 야곱이 아니라 리브가입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말하는 것을 듣고, 에서가 들로 나가자마자 야곱을 부릅니다. 염소 새끼를 가져오라 하고, 별미를 직접 만들고, 집안 자기 처소에 있던 에서의 좋은 의복을 꺼내 입히고,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을 염소 가죽으로 꾸밉니다. 27장 앞부분에서 가장 많이 움직이는 사람이 리브가입니다.

야곱은 망설입니다. 그런데 12절에서 그가 걱정하는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들킬 가능성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찐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찌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그 말을 리브가가 13절에서 자릅니다.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어머니가 왜 거기까지 갔는지 27장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앞 장에 실마리가 놓여 있습니다. 두 아이가 태 속에서 싸울 때 리브가가 여호와께 묻자,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이삭이 아니라 리브가였습니다. 25장은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하고 두 사람의 마음이 이미 갈라져 있었다는 것도 적어 둡니다.

그렇다고 본문이 리브가의 행동을 그 말씀으로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리브가가 그 대답 때문에 이렇게 했다는 문장은 27장 어디에도 없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리브가였다는 사실과, 그가 저주를 자기 앞으로 돌리겠다고 했다는 말뿐입니다. 그 사이는 비어 있고, 비어 있는 채로 다음 장면이 이어집니다.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아들이 겁낸 것을 어미가 대신 지겠다는 말인데, 그 말이 형의 복을 가져오라는 재촉의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속아서 준 복인데 왜 되돌리지 않았을까

에서가 돌아오는 대목이 27장에서 가장 짧고 가장 아픕니다. 별미를 만들어 들고 들어와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합니다. 이삭이 너는 누구냐, 하고 묻고 대답을 듣습니다. 그다음 문장이 33절입니다.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떨면서 이삭이 한 말이 뜻밖입니다. 무르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입니다. 속은 것을 안 사람이 속인 사람의 복을 그 자리에서 확정합니다. 37절도 같습니다.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하고 이미 지나간 일처럼 말합니다. 그러고는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하고 손을 놓습니다.

에서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39절과 40절이 있습니다. 다만 28절에서 야곱에게 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 에서에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라는 말로 뒤집혀 나옵니다. 같은 단어가 반대 방향으로 놓입니다. 그 끝에 붙은 말은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입니다.

복이 왜 물러지지 않는지 27장은 따지지 않습니다. 되돌린다는 생각 자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한 장 뒤에서 이삭은 속은 것을 다 알고 난 뒤에 야곱을 다시 불러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하고 이번에는 이름을 알고 이름을 부르며 합니다. 27장의 축복이 무효였다면 28장에 바로잡을 자리가 있었는데, 이삭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속은 것을 알아차린 사람이 처음 한 말이 취소가 아니라 확정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복을 곧바로 누렸을까

27장은 축복으로 끝나지 않고 도망으로 끝납니다.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왔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그 말이 리브가에게 들어가고, 리브가는 다시 야곱을 부릅니다. 이번에는 무엇을 가져오라가 아니라, 하란으로 가서 라반에게 피하라는 말입니다.

리브가가 붙인 기한이 44절에 있습니다.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 그 몇날이 얼마였는지는 31장이 알려 줍니다. 야곱이 라반 앞에서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년에, 하고 셉니다.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양떼를 위하여 육 년이었습니다.

45절에는 한 문장이 더 있습니다. 내가 곧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그 부름은 창세기에 나오지 않습니다. 야곱이 돌아온 뒤 리브가를 만났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35장은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어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한 일만 적고, 리브가 자신은 49장에서 야곱이 막벨라 굴에 묻힌 사람들을 꼽을 때에야 이름이 나옵니다.

형과 다시 만나는 장면도 27장에서 받은 말과는 딴판입니다. 29절은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라고 했는데 33장에서 야곱은 에서 앞으로 나아가며 몸을 일곱번 땅에 굽힙니다. 달려와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우는 쪽은 에서입니다. 복을 받은 사람이 이십 년 만에 형 앞에 엎드리고, 복을 빼앗긴 사람이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하고 말합니다.

몇날 동안이라던 기한은 이십 년이 되었고, 곧 불러오겠다던 약속은 지켜졌다는 기록 없이 창세기에서 사라집니다.

묵상 포인트

  1. 첫째, 이삭이 네 번 물었다는 사실이 오래 남습니다. 의심이 없어서 속은 게 아니었습니다. 이상하다고 느낀 신호가 분명히 있었는데도 손에 잡히는 쪽을 믿었습니다. 확인을 안 해서 어긋나는 일보다, 확인하고도 그냥 지나가는 일이 더 흔합니다.
  2. 둘째, 리브가는 아들을 살리려고 움직였고 그 대가로 아들을 잃었습니다. 죽음을 면하게 하려고 보냈는데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27장은 그 일을 슬프다고도 마땅하다고도 적지 않고, 몇날이라던 말과 이십 년이라는 말을 각각 제자리에 놓아둡니다.
  3. 셋째, 에서의 울음은 27장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방성대곡하며, 그리고 소리를 높여 우니, 하고 두 번 적힙니다. 복을 받은 쪽 이야기 옆에 복을 놓친 쪽의 소리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27장을 덮고 나면 누가 옳았는지가 정리되지 않습니다. 본문이 정리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이 어두운 아버지, 오래전에 들은 말을 품고 있던 어머니, 매끈매끈한 손을 가리고 들어간 아들, 들에서 돌아와 빈손이 된 아들이 각자 한 일만 적혀 있습니다. 판정은 뒤로 미뤄지고, 이야기는 도망가는 사람의 뒷모습으로 넘어갑니다. 다음 장에서 그 사람은 해가 지자 한 곳에 멈춰 돌을 베고 눕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