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범위  창세기 32장 1절-32절

창세기 32장은 하루 남짓한 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낮에 소식을 듣고, 밤에 예물을 고르고, 한밤에 강을 건너고, 해가 돋을 때 다리를 절며 길을 갑니다. 같은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이름까지 바뀌어요. 오늘은 그 시간을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대목마다 잠깐씩 멈춰 봅니다.

낮, 마하나임에서 사백 명이 온다는 소식을 듣다

광야 언덕 아래 두 무리로 멀찍이 나뉜 천막과 양 떼, 낙타 무리가 있고 먼 지평선에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오후의 파스텔 수채화

31장 끝에서 라반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야곱은 다시 길을 갑니다. 1절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나요. 야곱은 그들을 보고 하나님의 군대라 하며 그 땅을 마하나임이라 부릅니다. 뒤에서 쫓아오던 라반이 겨우 물러간 참이었어요. 이제 앞에는 형 에서가 기다립니다. 그 사이에서 하나님의 군대를 먼저 보여 주신 거죠.

그런데 야곱이 바로 한 일은 사람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에서에게 전하라고 한 말이 꽤 공손해요. 내 주 에서, 주의 종 야곱. 스무 해 전 장자의 복을 가로챈 동생이 이번엔 스스로를 종이라 부릅니다.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다는 말도 덧붙이죠. 빈손으로 얻으러 온 게 아니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돌아온 사자들의 대답은 짧았습니다. 그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7절은 그 순간의 야곱을 이렇게 적어요.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그는 함께한 사람과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눕니다. 에서가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라도 피하게 하려고요.

잠깐 멈추게 되는 건 이 대목입니다. 조금 전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그 땅 이름까지 지어 붙인 사람이에요. 그런데 소식 하나에 곧바로 제 무리를 반으로 가릅니다. 하나님의 진영을 본 눈과 겁에 질린 손이 같은 날 같은 사람에게 있었어요. 믿음이 있는데도 두려울 수 있다는 걸 본문은 굳이 숨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본 그날, 야곱은 두려워 자기 무리를 두 떼로 나눴습니다. 본문은 그 둘을 나란히 적어 둡니다.

그날 밤, 기도하고 나서 예물 떼를 고르다

넓은 광야 길 위로 염소 떼, 양 떼, 낙타 무리, 소 떼, 나귀 무리가 각각 간격을 두고 한 줄로 길게 앞서 걸어가는 해질녘 파스텔 수채화

무리를 나눈 다음 야곱은 기도합니다. 9절부터 12절까지 이어지는 기도예요. 벧엘에서 조건을 걸고 서원하던 스무 해 전과는 첫마디부터 다릅니다.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돌려 드립니다.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제가 온 건 가라고 하셨기 때문이라는 거죠.

10절이 이 기도의 한가운데입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방금 겁이 나서 나눈 두 떼를 은혜의 증거로 다시 세어 봅니다. 그리고 11절에서 두려움을 그대로 말해요.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13절, 야곱은 거기서 경야합니다. 밤을 보낸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소유 중에서 형에게 줄 예물을 고릅니다. 암염소 이백, 수염소 이십, 암양 이백, 수양 이십, 젖 나는 약대 삼십과 그 새끼, 암소 사십, 황소 열, 암나귀 이십, 새끼 나귀 열. 새끼 약대를 빼고도 오백오십 마리입니다.

야곱은 이걸 한 번에 보내지 않아요. 떼마다 종에게 맡기고 각 떼 사이를 띄우라고 합니다. 에서가 물으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같은 대답을 하게 해요.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20절에 그 속셈이 적혀 있습니다.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으리라.

기도하고 나서도 야곱은 계산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기도가 거짓이었던 건 아니에요. 은혜를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한 입으로, 같은 밤에 형의 마음을 풀 순서를 짜고 있었습니다. 혹시라는 말 하나가 그날 밤 야곱의 마음을 다 보여 줍니다.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겁이 나서 나눈 두 떼를 야곱은 은혜로 다시 셉니다.

한밤, 얍복 나루에 홀로 남다

어스름 새벽빛이 막 비치는 좁은 강 여울에 넓적한 징검돌이 놓여 있고 건너편 강가에 짐 보따리 몇 개만 남은 고요한 계곡의 파스텔 수채화

예물 떼는 앞서 가고, 야곱은 무리 가운데서 다시 밤을 보냅니다. 그러다 22절, 밤에 일어나요.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하고, 소유도 다 건너게 합니다. 그리고 24절,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앞에 보낸 예물도, 강 건너로 보낸 식구도 없이 혼자가 된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합니다. 본문은 그가 누구인지 처음엔 말하지 않아요. 그저 어떤 사람이라고만 적습니다. 25절, 그 사람은 야곱을 이기지 못하자 환도뼈를 쳤고,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됩니다.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그 말에 야곱이 대답합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뼈가 어긋난 채로 붙잡고 놓지 않아요. 그러자 그 사람이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니이다.

스무 해 전 아버지 이삭도 똑같이 물었습니다. 27장에서 이삭이 네가 누구냐 물었을 때, 야곱은 에서라고 대답했어요. 그렇게 받은 복을 품고 집을 떠났죠. 이번에는 제 이름을 그대로 말합니다. 그리고 28절, 새 이름을 받아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도 그의 이름을 묻습니다. 대답은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였어요. 이름은 끝내 알려 주지 않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합니다. 야곱은 그곳을 브니엘이라 부르죠.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예물로 형의 얼굴을 풀어 보려던 사람이, 그 밤에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한 겁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번에는 야곱이 제 이름을 그대로 말했습니다. 새 이름은 그다음에 왔습니다.

해 돋을 녘, 다리를 절며 브니엘을 지나다

해가 막 떠오르는 언덕 너머로 이어지는 흙길 위에 고르지 않은 발자국 한 줄이 남아 있고 길가에 지팡이 하나가 기대어 있는 이른 아침의 파스텔 수채화

31절은 짧습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밤새 이어진 일이 끝나고 해가 떠요. 하지만 야곱은 더 이상 전처럼 걷지 못합니다.

이상한 일이죠. 이겼다는 말을 들은 사람이 절뚝거리며 길을 갑니다. 축복을 받았는데 다리 하나는 어긋난 채예요. 본문은 둘 중 하나를 지우지 않습니다. 새 이름도, 저는 걸음도 그날 아침 야곱이 얻어 나온 것이었어요.

32절은 이야기 밖으로 한 걸음 나와서 덧붙입니다.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 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한 사람이 하룻밤 겪은 일을 그 이름을 물려받은 백성이 식탁에서 기억했다는 거예요.

해가 뜬 다음에도 에서는 여전히 사백 명과 함께 오고 있었습니다. 그 만남은 다음 장에서 이어져요. 달라진 건 상황이 아니라 그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형 앞에 서기 전에 하나님 앞에 먼저 서 본 사람이 되었어요.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새 이름과 저는 걸음이 함께 왔습니다.

묵상 포인트

  1. 첫째, 하나님의 군대를 본 날에도 야곱은 두려워 무리를 둘로 나눴어요. 두려움이 있다고 믿음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야곱은 그 두려움을 숨기지 않고 기도 속에서 그대로 말했습니다. 겁낸다고 말할 수 있는 자리, 그게 이 장의 기도였어요.
  2. 둘째, 앞세운 예물도 건너보낸 식구도 없이 혼자 남았을 때 씨름이 시작됐습니다. 늘 무언가를 앞에 세워 두고 살던 사람이 처음으로 맨몸이 된 밤이었어요. 기댈 것을 다 보내고 나서야 마주하게 되는 얼굴이 있습니다.
  3. 셋째, 이스라엘이라는 이름과 저는 다리는 같은 밤에 왔습니다. 복을 받고 나서도 상처가 남을 수 있고, 그 상처가 곧 그 밤을 기억하는 표시가 되기도 해요. 절뚝이는 걸음으로도 해 뜨는 쪽을 향해 갈 수 있습니다.

창세기 32장은 경야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13절과 21절, 야곱은 두 번 밤을 넘기려고 누웠어요. 그리고 22절에 밤에 일어나 강을 건너게 하고, 그 뒤로는 잠든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형의 얼굴을 볼 일이 걱정돼 잠 못 든 밤이 하나님의 얼굴을 본 밤이 되었어요. 내일 만날 사람을 두고 밤새 뒤척이는 날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 밤이 꼭 걱정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 32장은 해가 돋는 장면으로 그걸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