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넥스트도어 ANIMAL 가사 읽기, 서울 꼭대기 다음 자리를 노리는 사람의 2분 26초
BOYNEXTDOOR (보이넥스트도어) 'ANIMAL' Official MV · HYBE LABELS
보이넥스트도어가 9월 28일 저녁 6시에 정규 1집 리패키지 HOME: DELUXE 를 냈다. 6월 8일에 나온 HOME 아홉 곡에 신곡 다섯 곡을 붙인 열네 곡짜리 앨범이고, 타이틀은 ANIMAL 이다. 곡 길이는 2분 26초. 뮤직비디오는 공개하고 여섯 시간 남짓 만에 100만 회를 넘겼다. 이 글은 가사만 따로 떼어 읽는다. 누가 어디에 서서 말하는지, 절마다 무엇이 바뀌는지, 같은 말이 왜 계속 돌아오는지 차례로 본다.
말하는 사람은 이미 꼭대기 근처에 서 있다
첫 줄부터 위치를 말한다. 서울 꼭대기, 그 다음 자리. 꼭대기에 오르겠다는 게 아니라 꼭대기를 찍은 뒤에 갈 곳을 찾는 사람의 말투다. 이어서 빌딩 숲의 집주인이 누구냐고 묻는다. 질문처럼 들리지만 답은 정해져 있다.
이 사람은 겁이 없다. 매운 걸 통째로 붓고, 뒷일은 내 알 바 아니라고 한다. 도레미처럼 한 칸씩 올라간다는 말도 나온다. 조심스럽게 계단을 밟는 게 아니라 음계를 부르듯 가볍게 올라간다.
그러니까 화자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꽤 올라와서, 여기서 멈출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다. 6월 정규 1집이 연습생 시절과 가족 이야기를 꺼낸 진지한 앨범이었다면, 이 곡의 화자는 그 무게를 잠깐 내려놓고 몸부터 움직인다.
꼭대기에 오르려는 사람이 아니라, 꼭대기 다음을 찾는 사람이 말한다.
1절은 도시를, 2절은 어제의 나를 앞지른다
1절의 풍경은 바깥이다. 서울, 빌딩, 집주인. 남들과 겨루는 자리에서 자기 위치를 과시한다. 판이 크고 목소리도 크다.
2절로 넘어가면 상대가 바뀐다. 어제의 나를 신호위반한다는 줄이 나온다. 앞지를 대상이 남이 아니라 하루 전의 자기 자신이다. 한계를 향해서는 나 잡아 보라고 도발한다. 회사가 이번 곡을 소개하며 끝없이 스스로를 넘어선다고 한 대목이 가사에서는 이 줄에 들어 있다.
재미있는 건 2절의 소품이다. 아이스티에 샷을 세 번 추가하고, 카페인으로 머리에 시동을 건다. 구멍 난 신발이 몇 켤레인지 세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는다. 1절이 펜트하우스 같은 말로 부풀었다면 2절은 연습실 바닥에 가깝다. 높은 곳을 노리는 사람이 실제로는 늘어난 티셔츠 차림으로 뛰고 있다는 대비가 이 곡에서 가장 사람 냄새 나는 부분이다.
후렴 앞에는 두 절 모두 같은 단어 목록이 붙는다. 코첼라, 펜트하우스, 뉴욕, 프레스티지, 플레이어스, 나마스테. 무대와 집과 도시와 격이 한 줄로 이어진다. 설명 없이 이름만 던져서 원하는 것의 크기를 보여 준다. 그리고 목록은 매번 이게 네가 해야 할 일이라는 말로 끝난다.
동물이라는 말이 서른 번 돌아온다
후렴은 거의 한 단어로 되어 있다. 동물처럼 움직이라는 말, 그리고 animal 의 반복. 후렴 한 번에 아홉 번 나오고, 인트로와 후렴 세 번을 다 합치면 이 단어만 서른 번이다. 2분 26초짜리 곡에서 5초에 한 번꼴이다. 사이에 끼는 한국어는 가자 하나뿐이다.
여기서 동물은 거친 짐승이라기보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상태를 뜻한다. 작사에 참여한 운학은 이 줄을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자유롭게, 본능대로 움직이라는 뜻이라고 풀었다. 1절의 과시도, 2절의 자기 추월도 결국 이 한 동작으로 모인다.
브리지에서 이 생각이 문장으로 바뀐다. 끝내주는 비트니까 분명히 누를 거고 당연히 필요할 거라고 몰아친 뒤, 그냥 해, 본능을 따라가라는 두 마디를 두 번 되풀이한다. 곡 안에서 가장 설명에 가까운 대목인데, 그 설명조차 생각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마지막 후렴은 한 줄이 늘어난다. 더는 못 참겠다는 말이 두 번 나오고, 이어서 나는 동물이라는 선언이 나온다. 처음엔 동물처럼 움직이라고 남에게 권하던 말이, 끝에서는 내가 그렇다는 고백으로 바뀐다. 명령에서 자기소개로 넘어가는 이 한 걸음이 가사의 결말이다.
처음엔 동물처럼 움직이라고 권하고, 끝에서는 내가 동물이라고 말한다.
한 문장으로 줄이면, 생각을 멈춰야 나오는 속도
ANIMAL 은 가사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곡이 아니다. 장면은 짧고 단어는 목록처럼 던져진다. 대신 말의 방향이 분명하다. 남을 앞지르는 데서 시작해 어제의 나를 앞지르고, 마지막엔 생각 자체를 앞질러 버린다.
보이넥스트도어에게는 처음 해 보는 일렉트로 펑크다. 명재현은 낯선 장르라 여러 곡을 들으며 공부한 뒤 데모를 만들었다고 했고, 태산은 미국 공연에서 팬들이 내던 소리를 곡에 가져왔다. 작사에는 지코와 kako, 명재현·태산·운학이 이름을 올렸다. 멤버들이 듣는 사람에게 부탁한 건 깊이 생각하기보다 잠깐 이성을 내려놓고 느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곡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올라갈 만큼 올라온 사람이, 다음 칸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간다고 말하는 노래.
이렇게 들으면 더 재미있다
- 후렴 앞 단어 목록이 나올 때 가사를 따라 읽어 보자. 코첼라부터 나마스테까지 여섯 단어가 줄줄이 떨어지면서, 설명 없이 원하는 것의 크기만 쌓인다.
- 1절의 서울 꼭대기와 2절의 늘어난 티셔츠를 이어서 들어 보자. 같은 화자가 과시하다가 바로 자기 차림을 들키는 대비가 곡의 온도를 잡아 준다.
- 마지막 후렴에서 더는 못 참겠다는 줄이 붙는 지점을 기다려 보자. 동물처럼 움직이라던 권유가 나는 동물이라는 말로 바뀌는 순간이다.
- 뮤직비디오는 대전·파주·인천에서 찍었고 사람 많은 거리와 시장을 뚫고 달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가사의 앞지르기를 화면이 그대로 몸으로 옮긴다.
리패키지에는 ANIMAL 말고도 신곡이 네 곡 더 있다. 클리셰, 붐 붐 붐, 일본 발표곡을 한국어로 다시 부른 카운트 투 러브, 유튜브에 먼저 풀었던 팬송 400 이어스. 6월의 HOME 이 집 안 이야기였다면 이번에 붙은 다섯 곡은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간 쪽에 가깝다. ANIMAL 을 먼저 듣고 앨범을 처음부터 다시 돌려 보면 그 차이가 잘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