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R] 천년을 견디는 종이, 한지 (SUB) · 국가유산채널(K-Heritage Channel)

영상  4편 · 다 합쳐 1시간 44분채널  국가유산채널묶은 기준  지·필·묵·연 문방사우  없음 · 공정 이름만 자막으로

문방사우는 종이·붓·먹·벼루 넷을 벗에 빗댄 말입니다. 이 넷을 만드는 과정을 각각 한 편씩 담은 영상이 한 채널에 모여 있습니다. 네 편을 이어 보면 같은 숫자가 자꾸 나옵니다. 붓털은 돌 밑에서 1년, 다 만든 먹은 매달린 채로 1년, 벗긴 닥 껍질은 말려 두었다가 이듬해에 씁니다.

종이 한 장을 뜨려고 한 해를 씁니다

맨 위에 걸어 둔 편이 네 편 중 제일 깁니다. 35분인데 정작 종이를 뜨는 장면은 26분이 지나서야 나옵니다. 앞의 26분은 전부 준비입니다. 그 준비가 무엇인지 보고 나면 한지 한 장이 달리 보입니다.

영상은 밤에서 시작합니다. 바람 없는 날을 골라, 불티가 밖으로 튀지 않게 조심하면서 재를 만듭니다. 이 재가 나중에 닥 껍질을 삶을 잿물이 됩니다. 이어서 황촉규를 캐는 날이 나옵니다. 뿌리를 찧어 짜낸 끈끈한 물이 닥풀입니다. 종이를 뜰 때 섬유가 물속에 고르게 떠 있도록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닥나무를 베고 찌는 대목에서 눈에 걸리는 게 하나 있습니다. 닥을 찌는 땔감이 작년에 껍질을 벗기고 남은 닥대입니다. 올해 벗긴 껍질도 그 자리에서 쓰지 않습니다. 널어 말려 두었다가 이듬해에 씁니다. 벗겨 말린 껍질을 사나흘 쪄서 불린 다음 겉껍질을 훑어 하얀 속껍질만 남깁니다. 이 백피 만들기가 봄에 시작해 가을까지 이어집니다. 한지 공정에서 제일 오래 걸리는 자리입니다.

그렇게 준비한 닥을 잿물에 삶고, 두들겨 섬유로 풀고, 닥풀을 섞은 다음에야 발틀을 잡습니다. 외발뜨기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앞뒤좌우에 물을 흘려 여러 겹을 겹칩니다. 옛사람들이 한지를 백지(百紙)라 부른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아흔아홉 번 손이 가고 쓰는 사람이 백 번째로 만진다는 뜻입니다.

화면에 이름이 두 번 뜹니다. 국가무형유산 한지장 보유자 김삼식, 그리고 문경한지장 전승교육사 김춘호입니다. 한지장이 국가 종목이 된 해가 2005년입니다. 한지 만드는 기술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신청서가 올라가 있고, 등재 여부는 올해 12월 정부간위원회에서 갈립니다. 영상의 마지막 장면은 봄에 올라온 닥나무 새순입니다. 여러해살이라 해마다 새로 나고, 한 해에 3~4미터까지 자랍니다.

종이를 뜨는 장면은 35분짜리 영상에서 26분이 지나서야 나옵니다. 앞은 전부 재료를 만드는 시간입니다.

염소털은 돌 밑에서 1년을 눌려 있습니다

필장, 붓을 매다(Piljang : Korean Traditional Brush Making) | K-ASMR | KOREA(ENG SUB) · 국가유산채널(K-Heritage Channel)

두 번째는 붓입니다. 31분짜리인데 첫 재료가 나오는 장면부터 좀 뜻밖입니다. 짐승 털 한 뭉치가 통째로 놓여 있습니다. 염소털입니다.

먼저 털에 붙은 껍질을 털어 냅니다. 그다음이 탈지입니다. 왕겨를 태운 재에 털을 묻어 기름기를 빼는데, 여기서 시간이 훅 뜁니다. 무거운 돌로 눌러 놓고 1년을 그대로 둡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재를 갈고 사이에 끼운 종이를 새것으로 바꿔 줍니다. 붓 한 자루가 되기 전에 털이 먼저 1년을 눕니다.

털 고르기가 붓 만드는 일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자막이 짚습니다. 체로 쳐서 굽거나 휜 털을 떨어뜨리고 곧은 털만 남깁니다. 길이를 맞춰 자르고, 고루 섞고, 저울에 답니다. 섞는 내내 지켜야 하는 규칙이 하나 있는데 털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16분쯤에는 물에 담근 털끝을 눌러 보며 안 굽는 뻣뻣한 털을 골라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붓끝은 밀랍을 입히고 달군 인두로 지져 굳힙니다. 붓대는 1년생 대나무를 씁니다. 호비칼로 속을 파낸 뒤, 찹쌀풀에 옻을 섞은 풀로 털과 대를 붙입니다. 충청북도 무형유산 필장인 유필무 장인의 작업입니다. 올린 지 세 해가 지나 조회수 100만을 넘겼습니다.

기름기를 빼려고 재에 묻어 두는 기간이 1년입니다. 붓을 매기 전에 이미 한 해가 지나갑니다.

그을음을 열흘 모으고, 다 만든 먹은 1년을 매답니다

검은 향기가 가득한 그을음 속에서 얻다, 먹장(Meokjang : Korean Pine InkStick) | K-ASMR | KOREA(ENG SUB) · 국가유산채널(K-Heritage Channel)

세 번째는 먹입니다. 네 편 중 제일 짧은 14분 반짜리인데, 담긴 시간은 제일 깁니다.

먹에는 두 갈래가 있습니다. 기름을 태운 그을음으로 만드는 유연먹,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드는 송연먹. 이 영상은 송연먹입니다. 아무 소나무나 태우지 않고 송진이 배어 굳은 관솔 부분만 씁니다. 가마에 불을 넣고 열흘을 땝니다. 굴뚝을 타고 흘러든 그을음이 방 안쪽에 새까맣게 앉는데, 그걸 긁어모아 체에 두 번 칩니다. 한 번은 굵은 것을 걸러내고, 두 번째에 고운 가루만 남깁니다.

여기 섞는 것이 아교입니다. 소가죽 안쪽 껍질과 소뼈를 하루 넘게 고아서 만듭니다. 그을음과 아교를 6대 4로 반죽해 치대고, 틀에 넣어 모양을 잡습니다.

모양이 나왔다고 끝이 아닙니다. 한 번 말린 뒤 종이와 재로 덮어 공기를 끊은 채 이레를 둡니다. 재에서 꺼낸 다음 또 한 달 넘게 말립니다. 그러고도 실온에 매달아 1년을 더 보냅니다. 자막에 '1년 이상'이라고 뜨는데, 앞의 붓에서 본 그 1년과 묘하게 겹칩니다.

만드는 사람은 한상묵 장인입니다. 무형유산 보유자는 아닙니다.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전승 계보가 끊긴 자리에서 되살린 기술이라 그렇습니다. 2002년 경북 영양에서 나온 송연 가마터를 근거로 전통 가마를 다시 지었고, 2014년에 고용노동부가 전통먹 숙련기술전수자로 인정했습니다. 여기서 나온 먹이 규장각 조선왕조실록 복제본과 해인사 팔만대장경 인경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가마에 열흘, 재 속에 이레, 다시 한 달, 그리고 매달린 채로 1년. 14분짜리 영상에 이 순서가 다 들어 있습니다.

벼루는 기다리는 대신 깎아 냅니다

선비의 혼을 담은 아름다운 돌, 벼루장(Master Artisan of Making Inkstone)(SUB) | K-ASMR | KOREA · 국가유산채널(K-Heritage Channel)

네 번째는 벼루입니다. 앞의 세 편이 기다리는 이야기였다면 이 편은 깎아 내는 이야기입니다.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붉은 돌이 나는 자리에서 찍었습니다.

보통 벼루 하면 검은 남포석을 떠올리는데 여기 원석은 자줏빛이 돕니다. 그래서 자석벼루입니다. 돌이 물을 거의 먹지 않아 한 번 갈아 둔 먹물이 오래갑니다. 먹이 곱게 갈려 찌꺼기도 덜 생깁니다.

판잡기로 기본 틀을 잡고, 강모라는 연장으로 바닥을 고릅니다. 이 연장은 손목으로 미는 게 아니라 어깨에 걸치고 상체 무게로 밀어야 합니다. 먹물이 넘치지 않게 테두리를 두르는 상사 긋기, 물이 고이는 자리를 파내는 물집 파기가 이어집니다. 정을 너무 세워 대면 날이 돌에 박혀 버립니다. 돌결을 보고 각도와 힘을 그때그때 바꾼다는 설명이 3분 무렵에 나옵니다.

화면에 뜨는 이름은 신재민, 자석벼루장 전승교육사입니다. 자석벼루장은 2008년 10월 10일 충청북도 무형유산이 됐고 명예보유자가 아버지 신명식입니다. 영상이 올라간 뒤 상황이 한 칸 움직였습니다. 충청북도가 이달 7일 신재민을 보유자로 인정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30일 동안 의견을 받고 11월 무형유산위원회 심의에서 결론이 납니다. 단양에서 4대째입니다.

원석 채취부터 재단, 상사 긋기, 물집 파기, 문양 조각, 광내기까지 전 과정을 혼자 구현한다는 것이 이번 인정 예고의 근거였습니다.

어느 편부터 켤지

네 편을 한 번에 다 볼 필요는 없습니다. 짧은 것부터 가면 먹 14분, 벼루 24분, 붓 31분, 한지 35분 순서입니다. 처음이라면 먹부터 켜는 쪽을 권합니다. 공정이 짧게 끊겨 있어서 열흘·이레·한 달·1년이 화면에 차례로 뜹니다. 시간이 쌓이는 게 눈에 보입니다.

소리를 들으려고 켜는 거라면 벼루입니다. 24분 내내 정으로 돌을 쪼는 소리만 납니다. 붓과 한지는 길어서 한 번에 끝까지 보기 버겁습니다. 붓은 앞 10분, 털 고르는 대목까지만 봐도 되고, 한지는 26분부터 종이 뜨는 장면만 따로 봐도 됩니다.

네 편에는 말이 없습니다. 해설도 내레이션도 없고 공정 이름만 자막으로 뜹니다. 그래서 틀어 놓고 다른 일을 해도 되는데, 그러면 놓치는 게 있습니다. 자막에 적힌 숫자입니다. 열흘, 이레, 한 달, 한 해.

짧은 순서로는 먹 → 벼루 → 붓 → 한지입니다.

영상에서 볼 만한 곳

  • 한지 16분 언저리 — 봄에 시작해 가을까지 가는 백피 만들기. 한지 공정에서 제일 오래 걸리는 자리입니다.
  • 붓 3분 49초 — 무거운 돌 밑에 눌린 염소털. 여기서 1년이 지나갑니다.
  • 먹 6분 49초 — 그을음과 아교를 6대 4로 치대는 대목.
  • 벼루 4분 32초 — 강모를 어깨에 걸치고 상체 무게로 미는 자세.
  • 한지 33분 43초 — 봄에 3~4미터까지 자라는 닥나무 새순으로 끝맺습니다.

문방사우라는 말은 책상 위 네 가지를 벗에 빗댄 표현입니다. 네 편을 다 보고 나면 그 벗들이 책상에 오기까지 몇 해가 걸렸는지 대충 셈이 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