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 왕립식물원이 올린 23분짜리 나무 영상 — 참나무·야자·은행나무 세 구간으로 끊어 보기
Talking trees · Royal Botanic Gardens, Kew
큐 왕립식물원이 이달 초에 올린 영상은 23분 27초입니다. 재생 버튼 앞에서 한 번 망설이게 되는 길이인데, 열어 보면 안이 나무 세 그루로 깔끔하게 갈라져 있습니다. 참나무에 7분 45초, 야자에 7분 54초, 은행나무에 7분 26초를 씁니다. 앞부터 차례로 볼 필요가 없으니 궁금한 나무가 있는 쪽부터 열면 됩니다.
23분이 나무 세 그루로 갈라집니다
먼저 전체 지도를 펴 두겠습니다. 아래 시간은 제가 임의로 나눈 게 아니라 큐가 영상 설명란에 적어 둔 구간 그대로입니다. 재생바에도 같은 칸으로 표시됩니다.
0:00~0:22 도입 — 22초짜리 짧은 인사입니다. 나무의 과학적 정의가 사실 없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큐에 나무가 1만 1천 그루 넘게 있다는 숫자도 여기서 나옵니다.
0:22~8:07 참나무 — 7분 45초. 큐의 수목 담당자가 정원 안 참나무 여러 그루를 옮겨 다니며 설명합니다. 이야깃거리가 가장 많은 구간입니다.
8:07~16:01 야자 — 7분 54초. 야자온실 안에서 찍었습니다. 세 구간 가운데 가장 깁니다.
16:01~23:27 은행나무 — 7분 26초. 나무에 직접 올라가 손보는 등반 수목관리사가 안내를 맡았습니다.
한 가지 미리 알아 두면 덜 헷갈립니다. 은행나무 구간만 화면이 늦가을입니다. 잎이 노랗고 바닥에 수북합니다. 8월에 올라온 영상이지만 세 구간을 각각 다른 때에 찍어 묶은 것이라, 계절이 어긋나 보여도 편집 실수가 아닙니다.
0분 22초, 8분 7초, 16분 1초. 이 세 숫자만 기억하면 원하는 나무로 바로 건너뜁니다.
참나무 구간 — 벌레혹 잉크에서 1987년 폭풍까지

큐에 있는 나무 1만 1천여 그루 가운데 참나무가 1,400그루쯤 됩니다. 화석 기록으로는 5천 6백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북반구 전역에 퍼져 살다 보니 참나무속은 종이 아주 다양해졌고, 속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 특징은 오히려 몇 개 안 됩니다.
1분 37초부터는 잎을 봅니다. 영국에 자생하는 참나무 두 종을 잎으로 가르는데, 한쪽은 잎자루가 거의 없이 잎이 가지에 바로 붙고 다른 쪽은 잎자루가 있습니다. 다만 종이 워낙 많아 잎만으로 이름을 정하기는 어렵다는 말이 뒤따릅니다.
2분 32초에 나오는 벌레혹이 이 구간에서 제일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말벌이 아직 여물지 않은 눈에 알을 낳으면 나무가 속아서 그 자리에 혹을 키웁니다. 애벌레는 그 안을 파먹고 자라다가 구멍을 뚫고 나갑니다. 껍질에 남은 그 구멍까지 화면에 잡힙니다.
이 혹이 천 년 넘게 잉크 원료였습니다. 몰식자 잉크라고 부르는 물건인데, 마그나카르타에 서명할 때 쓴 잉크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3분 23초부터는 참나무가 왜 핵심종인지 짚습니다. 곤충·새·균류·지의류·이끼까지 2,400종이 참나무에 기대어 삽니다. 3분 50초부터는 신화 쪽으로 넘어갑니다. 크고 높아 벼락을 자주 맞다 보니 제우스, 토르, 다그다처럼 천둥을 맡은 신들과 엮였습니다. 드루이드라는 말 자체가 참나무를 가리키던 옛말에서 왔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붙습니다.
4분 37초의 러콤 오크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1762년 한 묘목장에서 우연히 나온 잡종이고, 알아본 사람의 이름이 그대로 나무 이름이 됐습니다. 그 사람은 원래 나무를 베어 자기 관 판자로 썼습니다.
5분 24초부터 구간 끝까지가 알맹이입니다. 터너스 오크라고 부르는 나무가 1900년대 중반에 눈에 띄게 시들었습니다. 손을 쓰기 전에 1987년 대폭풍이 먼저 왔습니다. 큐에서만 700그루가 넘어갔고, 이 나무는 뿌리판째 들렸다가 제자리에 다시 떨어졌습니다.
쓰러진 나무를 치우는 데 몇 달이 걸려서 이 나무는 맨 마지막에 손을 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나무가 살아나 있었습니다. 수관 곳곳에 새 가지가 붙었습니다. 원인은 흙에 있었습니다. 관람객이 오래 밟고 다닌 자리라 흙이 단단히 다져져 물도 공기도 뿌리까지 내려가지 못했던 겁니다. 폭풍이 그 흙을 통째로 흔들어 놓은 셈이 됐습니다.
여기서 감압이라는 관리법이 나왔습니다. 압축 공기를 흙 속에 쏘아 다져진 층을 깨고 틈을 내는 방식입니다. 나무 한 그루를 관찰하다 얻은 요령이 정원 전체의 관리 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폭풍에 쓰러진 700그루보다, 들렸다 다시 앉은 한 그루가 더 많은 것을 바꿨습니다.
야자 구간 — 온실 168종과 팜유 이야기
야자온실은 1844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 규모로 지은 첫 유리온실이고, 뼈대를 세울 때 배 만들던 기술을 끌어왔습니다. 뒤집어 놓은 배 밑바닥처럼 생긴 이유가 그것입니다. 이 온실은 2027년에 보수 공사에 들어갑니다. 그전에 안을 봐 두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구간이 미리보기가 됩니다.
온실 안에 야자만 168종이 있습니다. 영국 바깥 기후에서 온 종들이라 밖에서는 못 삽니다. 닫힌 유리 아래라 온도와 습도를 높게 붙들어 둘 수 있어서 가능한 숫자입니다.
야자 하면 해변에 늘어진 코코넛 나무를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열대우림에 삽니다. 물이 넉넉하고 서리만 안 내리면 어디서든 자랍니다. 다만 분포가 고르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에 65종인데 열대 아시아에는 천 종이 넘습니다. 꽃가루 화석은 1억 년 전 지층에서도 나옵니다.
9분 42초부터 나오는 설명이 흥미롭습니다. 야자는 외떡잎식물입니다. 난초나 벼처럼 대체로 부드럽고 잘 휘는 무리인데, 야자만 그 틀을 벗어나 숲 지붕까지 올라갔습니다. 방법이 특이합니다. 싹이 튼 뒤 몇 해씩 바닥에 가만히 앉아 줄기 꼭대기의 눈을 굵게 키워 둡니다. 그게 충분히 커지면 그때부터 줄기를 밀어 올립니다.
쓰임새 이야기도 한참 이어집니다. 사탕야자는 꽃대를 잘라 수액을 받아 졸이면 설탕이 되고, 줄기에서 벗긴 섬유로는 지붕을 입힙니다. 작은 잎을 훑어 바구니나 모자를 엮고, 굵은 잎자루는 건축 자재로 씁니다. 한 그루에서 나오는 쓰임이 이렇게 갈라지는 식물이 흔하지 않습니다.
12분 30초부터는 기름야자입니다. 팜유는 화장품, 세제, 구운 과자까지 두루 들어갑니다. 영국 슈퍼마켓 포장 상품의 절반가량에 들어 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문제도 같이 짚습니다. 기름야자 농장이 넓어지면서 열대우림이 밀려났습니다.
그러면서도 안 쓰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기름야자는 그것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작물입니다. 그래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기른 팜유를 고르는 쪽을 권합니다. 포장에 붙은 표시를 확인하라는 정도로 구체적입니다.
14분 31초의 코코드메르는 씨앗 하나가 20킬로그램까지 나갑니다. 식물 씨앗 가운데 가장 무겁습니다. 14분 53초의 타히나는 2007년에야 학계에 이름을 얻은 야자입니다. 제보를 받고 마다가스카르 서부 석회암 지대로 들어가 몇 그루를 겨우 찾아냈습니다. 지금은 씨앗을 합법적으로 내보내 세계 여러 정원에서 나눠 기릅니다. 원산지에서 사라질 경우를 대비한 보험입니다.
야자 가운데 멸종 위협을 받는 종이 많게는 절반에 이를 것으로 봅니다.
은행나무 구간 — 1762년에 심은 나무와 그 냄새

16분 27초부터 잎과 수형을 봅니다. 큐의 은행나무는 10미터에서 25미터 사이입니다. 잎이 둘로 갈라진 부채꼴이라 학명에도 두 갈래라는 뜻이 들어가 있습니다.
18분 9초부터 나오는 낙엽 이야기가 은행나무다운 대목입니다. 다른 나무는 잎을 며칠에 걸쳐 조금씩 떨굽니다. 은행나무는 거의 하룻밤 사이에 한꺼번에 놓습니다. 바람에 흩어질 틈이 없으니 나무 밑에 노란 매트를 깔아 놓은 것처럼 쌓입니다. 잎자루 끝에 떨켜가 생기고 그 자리에서 잎이 떨어져 나가는데, 은행나무는 그 시점이 유난히 한꺼번에 옵니다.
19분 12초에는 한 나무에 잎이 두 종류 달린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하나는 광합성과 물 이동을 맡아 두껍고 튼튼합니다. 다른 하나는 가뭄이 닥쳤을 때 쓰는 예비용입니다.
19분 32초부터가 이 구간의 중심입니다. 화면 뒤에 선 은행나무는 1762년에 심었습니다. 조지 3세의 어머니인 아우구스타 왕비가 1759년에 시작한 정원에서 살아남은 몇 그루 가운데 하나이고, 큐에서는 이런 나무들을 올드 라이언스라고 부릅니다. 줄기 세 대가 뒤틀린 채 굵어져서 나이가 그대로 보입니다. 수그루입니다. 예전에 이 줄기에 암그루를 접붙여 봤다가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20분 44초부터는 왜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리는지 설명합니다. 2억 년 전 지층에서 나온 은행잎 화석이 지금 잎과 거의 같습니다. 속으로도 과로도 목으로도 은행나무 하나만 남았습니다. 한때는 야생 개체가 없고 사람이 심어 기른 것만 남았다고 봤는데, 이후 야생 집단이 확인됐습니다. 그래도 야생에서는 여전히 위기종입니다.
21분 31초부터는 암그루 차례입니다. 여왕이 심은 나무인데 열매가 달립니다. 여기서 그 냄새가 나옵니다. 부티르산이 원인이고, 상한 치즈에 가까운 냄새입니다. 화면에서 열매를 직접 짓이겨 보여 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는 편이 낫습니다.
냄새 이야기가 실없는 곁가지는 아닙니다. 씨를 옮겨 줄 동물을 부르려고 그런 냄새를 갖게 됐을 것으로 봅니다. 2억 년 전이라면 그 대상이 공룡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정원수나 가로수로는 대개 수그루를 골라 심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가을마다 나는 그 냄새를 피하려는 겁니다.
가로수 밑에서 가을마다 나는 그 냄새의 정체가 21분대에 나옵니다.
영상에서 볼 만한 곳
- 5분 24초~7분 16초 — 한 대목만 고른다면 여기입니다. 폭풍에 들렸다 다시 앉은 참나무 한 그루에서 흙 감압 관리법이 나온 이야기.
- 2분 32초~3분 20초 — 말벌이 만들게 한 혹이 천 년 넘게 잉크 원료였다는 대목.
- 12분 30초~13분 40초 — 팜유가 어디에 들어 있고, 그래서 무엇이 밀려났는지.
- 19분 32초~20분 18초 — 1762년에 심은 은행나무. 큐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축에 듭니다.
- 21분 31초부터 끝까지 — 은행 열매 냄새의 정체와 그 냄새가 왜 생겼는지.
나무 한 그루를 7분 넘게 들여다보는 영상은 흔치 않습니다. 세 구간 중 하나만 골라 봐도 손해는 아닙니다. 참나무 쪽은 이야기가 남고, 야자 쪽은 규모가 남고, 은행나무 쪽은 시간이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