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범위  창세기 44장 1절-34절

43장은 잔칫상으로 끝났습니다. 형제들은 시므온을 되찾았고, 베냐민도 무사했고, 나이 순서대로 앉아 함께 먹고 즐거워했어요. 44장은 그다음 날 새벽에 시작합니다. 이번 장은 한 사람만 따라가 보려고 해요. 스무 해 남짓 전 도단 들판에서 동생을 팔자고 말을 꺼냈던 넷째 아들 유다입니다.

새벽에 길을 나선 형제들, 그 뒤를 쫓아온 청지기

요셉은 형제들이 떠나기 전에 청지기를 따로 부릅니다. 자루마다 실을 수 있는 만큼 양식을 채우고, 각자 낸 돈을 다시 자루에 넣으라고 해요. 그리고 하나를 더 시킵니다. 내 잔, 곧 은잔을 막내의 자루 아귀에 그 양식값과 함께 넣으라.

날이 밝자 형제들은 나귀를 몰고 성을 나섭니다. 갇혔던 형제는 돌아왔고 막내도 옆에 있어요.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다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일은 잘 풀렸습니다. 열한 형제가 한 줄로 가나안 쪽 길을 타는 아침이었어요.

멀리 가기도 전에 청지기가 뒤에서 따라붙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악으로 선을 갚느냐. 내 주인이 그 잔으로 마시고 점도 치는데, 그걸 가져가다니 악하다. 요셉이 시킨 말을 그대로 옮긴 거예요.

형제들은 펄쩍 뜁니다. 자루에서 나온 돈도 가나안에서 도로 가져온 우리가 무슨 수로 주인 집의 은이나 금을 훔치겠느냐고요. 그리고 말이 앞서 나갑니다. 종들 가운데 누구에게서든 나오면 그는 죽을 것이고 나머지는 다 종이 되겠습니다. 청지기는 그 말을 받으면서 조건을 줄여요. 나온 사람만 종이 되고 나머지는 책임이 없다고요.

잘 풀렸다고 생각한 아침, 막내의 자루에는 아무도 모르게 은잔이 들어 있었습니다.

베냐민의 자루가 열리던 순간 유다가 본 것

형제들은 급히 자루를 내려 하나씩 풉니다. 청지기는 맏이부터 막내까지 나이 순서대로 뒤져요. 르우벤의 자루, 시므온의 자루, 레위의 자루, 그리고 유다의 자루.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루가 하나씩 비어 갈수록 안도도 커졌을 거예요. 마지막 자루가 남았고, 은잔은 거기서 나옵니다. 베냐민의 자루였어요.

형제들은 옷을 찢습니다. 성경에서 이 몸짓은 낯설지 않아요. 37장에서 구덩이가 빈 걸 본 르우벤이 옷을 찢었고, 피 묻은 채색옷을 받아 든 야곱이 옷을 찢었습니다. 이번엔 형제 모두가 찢어요. 그리고 아무도 막내만 두고 떠나지 않습니다. 각자 짐을 다시 나귀에 싣고 모두 성으로 돌아갑니다.

이 대목은 오래 들여다볼 만해요. 청지기는 분명히 나머지는 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베냐민 혼자 남기고 곡식을 실은 채 집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었어요. 스무 해 남짓 전 이 형제들은 아버지가 더 아끼던 동생을 은 이십에 넘기고 집으로 돌아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때와 같은 문이 다시 열렸는데, 이번엔 아무도 그 문으로 나가지 않아요.

혼자 남겨 두고 갈 길이 열려 있었는데, 형제들은 모두 짐을 다시 싣고 성으로 돌아갑니다.

변명을 내려놓고 대신 남겠다고 말한 유다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렀을 때 요셉은 아직 거기 있었어요. 형제들은 그 앞 땅에 엎드립니다. 요셉이 묻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했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 몰랐느냐.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유다 차지입니다. 본문도 이 무리를 유다와 그 형제들이라고 불러요.

유다의 첫마디는 변명이 아닙니다.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무슨 설명을 하겠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정직하다는 걸 보이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이어요.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습니다. 잔은 훔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죄악이 드러났다고 말해요. 유다가 그 자리에서 떠올린 죄가 은잔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셉은 받아 주지 않습니다.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잔이 나온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아버지께 올라가라. 형들을 시험하는 마지막 문이었을 거예요. 막내 하나만 내주면 나머지는 다 무사합니다.

유다가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리고 18절부터 34절까지 열일곱 절에 걸쳐 말을 이어요. 지난번에 내려왔을 때 주께서 아비와 아우를 물으셨고, 막내를 데려오라 하셨고, 아비가 처음엔 못 보낸다 했다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차례로 꺼냅니다. 꾸미는 말이 거의 없어요. 있었던 일을 순서대로 아뢸 뿐입니다.

그 안에 아버지의 말도 그대로 옮겨요.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는데 하나는 나가서 찢겨 죽은 줄 안다고, 이 아이마저 데려갔다가 해를 입으면 흰머리로 슬피 음부에 내려가게 하리라고요. 아버지에게 아내는 레아도 있었고 아들은 열둘이었습니다. 유다는 그 말이 서운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어요. 그런데 원망 한마디 섞지 않고, 그 말을 아버지가 얼마나 그 아이에게 매여 있는지 보여 주는 말로 씁니다.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묶여 있다고요.

그리고 마지막에 자기를 내놓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이 아이를 담보했습니다. 데려오지 못하면 영원히 죄를 지겠다고요. 그러니 청컨대 주의 종이 아이를 대신해 여기 남아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들과 함께 올려 보내 주십시오. 아이 없이 제가 어떻게 아버지께 올라가겠습니까. 아버지께 재앙이 닥치는 걸 차마 볼 수 없습니다.

동생을 팔자고 했던 사람이 동생 대신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유다는 그 말 앞에 아무 조건도 달지 않았어요.

말이 끝난 자리에 남은 침묵

44장은 유다의 말로 끝납니다. 요셉이 뭐라고 답했는지는 이 장에 없어요. 마지막 문장이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비에게 미침을 보리이다입니다. 장을 덮는 자리에 아버지 걱정만 남아 있어요.

이 장에서 유다가 얻은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은잔 일은 풀리지 않았고, 대신 남겠다는 말이 받아들여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은 분명히 달라져 있어요. 37장의 유다는 동생을 죽여서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차라리 팔자고 했습니다. 동생의 값을 따진 사람이었어요. 44장의 유다는 자기 몸값을 내놓습니다. 같은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방향이 반대예요.

본문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말해 주지 않습니다. 38장에서 다말 앞에 그는 나보다 옳도다 하고 고개를 숙인 일, 두 아들을 잃은 일, 43장에서 아버지 앞에 스스로 담보가 된 일이 그 사이에 놓여 있을 뿐이에요.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는 걸, 그 긴 시간이 오히려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37장에서 동생의 값을 따지던 입이, 44장에서는 자기 몸값을 내놓습니다.

묵상 포인트

  1. 첫째, 청지기는 은잔이 나온 사람만 남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에게는 막내를 두고 떠날 핑계가 충분했어요. 그런데 아무도 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달라졌는지는 말보다 그런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걷는지에서 먼저 드러나는 것 같아요.
  2. 둘째, 유다는 잔을 훔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다고 말했습니다. 억울한 자리에서 오래 묻어 둔 잘못을 먼저 떠올린 사람이에요. 억울함을 따지기 전에 내 안에 걸리는 게 무엇인지 한 번 들여다보게 됩니다.
  3. 셋째, 아버지가 한 아이에게만 마음을 쏟는다는 걸 유다는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 사실을 원망으로 꺼내지 않고 아버지를 지키려는 이유로 꺼냈어요. 서운함을 품은 채로도 상대를 위해 말할 수 있다는 걸 이 장면이 보여 줍니다.

창세기 44장은 대답 없이 끝납니다. 동생 대신 종이 되겠다는 유다의 말이 받아들여질지, 은잔을 둘러싼 이 시험이 어떻게 끝날지 이 장은 말해 주지 않아요. 다만 은 이십에 동생을 넘기던 형들이 이번엔 아무도 막내를 두고 떠나지 않았다는 것, 그 맨 앞에 유다가 서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애굽의 총리가 누구였는지, 형제들은 아직 모릅니다.